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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세의 골프 인문학(35)] 벤 호건 스윙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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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경제뉴스 이인세 칼럼] 벤 호건은 현대 골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전설적인 골퍼이다.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스윙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스윙으로 인식돼 있다. 수많은 21세기 선수들이 그의 스윙을 따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호건은 볼을 가장 잘 때려내는 최고의 볼 트라이커였다. 타고난 재능이 아닌,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인내심의 극치를 몸으로 보여준 동경의 대상이었다. 호건의 교습서인 ‘5가지 레슨’은 골프 서적의 바이블이지만, 그의 스윙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벤 호건의 비밀을 분석하고  파헤치려 노렸했지만  사실 그는 비법이 공개되는 것을 달가와 하지않았다. 

벤호건의 스윙

호건의 라이벌인 샘 스니드는 그의스윙을 유심히 보면서 임팩후 오른손을 덮는 플립 동작이 아주 늦다는 것을 밝혔다. 일반적으로는 임팩 직후 오른손이 왼손을 빨리 덮으면서 팔로우 스윙이 되는 반면, 호건의 오른손은 임팩 지점을 통과했는데도 오른손 바닥이 타겟방향으로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확한 타격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하는 동작이라고 샘은 밝히고 있다. 스트레이트로 임팩이 통과된 뒤에는 이른바 릴리즈가 되면서 볼을 뿌릴 수 있게 된다. 임팩시 오른 손등이  닫히지 않은채 타겟 방향으로 오래 유지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호건은 다운스윙을 시작할 때, 오른쪽 끝에 존재하는 그립, 양손과 양팔꿈치 등이 수직으로 지면 을 향해 떨어진다. 다운 스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양손과 그립을 오른발보다 더 오른쪽 바닥을 향해 떨어뜨리라고 그는 말한다. 목표의 반대쪽으로 클럽이 떨어지게 되면 몸은 본능적으 로 임팩에서도 같은 자세를 유지하려고 반응하기 때문에 임팩에서 수직으로 정확하게 클럽 페이스 가 들어오면서 볼은 스퀘어로 맞게 된다는 것이다. 왼손잡이였던 호건이 오른손 골퍼로 활동하면 서 오른손잡이가 느끼지 못한 양손의 균형에 대해 잘 인지했을 것이다. 그는 손으로 골프 채를 휘두르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손이 없는 것처럼 몸으로 움직이면서 상체의 힘도 뺀채 손이 아닌 몸으로 하는 스윙을 먼저 하라고 했다. 올바른 그립으로 손과 클럽이 하나가 된 듯한 스윙을 역설했다.

최근에는 유고 출신의 한 테니스 코치가 ‘슬로우 모션 연습법’으로 불린 호건의 비밀을 풀었다고 밝혔다. 골프를 빨리 배우고 싶으면 오히려 천천히 연습하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스윙 패턴을 보면서 익히라는 것이다. 실지로 호건은 거울판 이론도 기술했는데 흡사 조선시대 죄수들이 목에 찬 칼의 바닥 부분을 볼 위치에 대고 일어서서 어드레스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비스듬히 서있는 칼의 기울기가 자신이 지나가게 될 임팩존이라는 것이다.

군 복무시절 스윙을 잃어버릴까 보초를 서는 밤이면 달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스윙을 한 호건이었다. 제대 후 그의 스윙은 여러가지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양발을 밖으로 오픈시켜 스탠스 를 어깨넓이 이상으로 벌린채 무게 중심을 발뒤꿈치에 주었지만, 스탠스를 좁게 서고왼쪽발은 스퀘어로 놓고 무게중심이 발바닥에 놓이게 교정했다. 또 백스윙의 시작 에서 손목이 클럽 보다 먼저  테이크 어웨이 하던 것을 어드레스부터 손목이 클럽헤드보다 타겟쪽으로 놓이게 교정했다. 예전 어드레스에서는 뒷부분 척추선이 타겟 반대쪽으로 치우쳤으나 이를 수평으로 만들면서 백스윙시 상체와 어깨 회전을 종전보다 적은 각도로 유지하게 했다. 이는 어깨와 힢 회전이 같은 비율로 꼬이게 하는 것을 지양하고 상대적으로 힢의 회전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었다. 백스윙 의 탑에서 클럽과 손의 위치가 머리 위에 머물렀던 스윙을 어깨 뒤로 보내는 야구스윙처럼 평평한 스윙으로 바꾸었다. 다운스윙에서 무릎 이동을 과도하게 하는 것을 줄이고 오른 무릎을 사용하되, 구부린 무릎의 각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교정했다. 이렇게 하면 오른 무릎을 왼쪽으로 밀어주면서 왼 힢이 뒤로 이동함과 동시에 자연스레 왼쪽 앞에 공간이 생겨 스피드가 증가된다. 오른 무릎이 이동 속도를 조절해서 정교하면서 파워있는 스윙이가능하게 된 것이다.

1968년 일단의 과학자들에 의해 완벽한 스윙의 골퍼라는 칭호를 얻은 벤 호건도 사실 데뷰 이후 7년 간 우승이 없었던 불운한 선수였다. 데뷰 9년이 되어서야 겨우 첫승을 올리던 차에  공교롭게 2차 세계대전의 징집 명령마저 받았다. 제대후 빛을 보며 4년 여 동안 정상의 길을 달리던 그는 이번에는 최악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1949년 대회를 마치고 자동차로 부인과 텍사스 집으로 향하던 중 새벽의 안개낀 도로에서 마주오던 트럭과 정면 충돌을 한 것이었다. 재기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한쪽 다리를 잃을 수도 있는 중상으로 그의 골프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가 싶었다. 이를 악물고 재활을 시작한 지 6개월. 그는 기적처럼 일어났고, 이번에는 발목에서 엉덩이 까지 압박 붕대를 칭칭감고 시합에 참가하는 근성까지 발휘했다. 1950년 메리언에서 열린 US오픈. 호건은 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부상투혼을 발휘해 선두와 동점을 만들어내면서 연장3파전을 벌였다. 결국 그는 승리를 했고 이 날의 우승은 20세기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기적의 연장전으로 회자됐다.

그의 저력은 계속됐고 1953년 마스터즈에 이어 US오픈, 그리고 영국 카누스티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도 우승을 하면서 한해 3개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는 미국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 미국으로 금의환향한 그를 위해 뉴욕시민들은 1930년의 바비 존스 이래 23년 만에 카 퍼레이드를 벌여 호건의 귀국을 환영했다. 그의 목표는 골프 매카니즘을 완벽하게 달성하고 싶은 것이었다. 연습벌레처럼 스윙이 익혀질 때까지 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하며 해가 질 때까지 연습을 했다. 그런 열정으로 고질병이던 악성 훅을 아름다운 페이드로 바꿀 수 있었다. 보비 존스처럼 부잣집도, 아놀드 파머처럼 아버지 가 골프장 매니저도 아니었다. 잭 니컬라우스처럼 대학에서 엘리트 골프를 배울 수도 없었으며 타이거 우즈처럼 타고난 재질에 아버지의  후광을 입지도 못한 호건이었다. 골프장에 핀 잡초같았 던 그는 순전히 노력으로 악성훅을 고친 인간 승리의 표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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