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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세의 골프 인문학(36)] 눈 앞에서 놓친 4차례의 US 오픈
  • 이인세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6.0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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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경제뉴스 이인세 칼럼니스트] 미국의 전설적인 골프 영웅이면서 정작 US오픈에서만 우승을 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 1895년 이래 1백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US오픈은 미국인들에게 자랑스런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영웅에게도 뼈아픈 상처는 있는 법. 미국이 낳은 전설적인 골퍼 중 한명인 샘 스니드는 US오픈이 외면한 불운한 선수이다. PGA통산 82승으로 최다 우승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려 37번의 US오픈 출전에다 우승 찬스도 4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샘 스니드의 스윙. 챙이 짧은 중절모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1939년 필라델피아의 스프링 밀골프장. 마지막날의 파5 18번 홀. 넬슨 등 2위로 따라 오고있는 선수들이 3명, 샘은 한타 차로 이기고 있어 파세이브만 해도 우승이 가능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에 마지막 홀에서 그는 계산착오를 일으켰다. 17홀까지 동점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18홀에서 버디를 해야만 이기는 줄 알고 있었다. 결국 18홀의 두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려고 무리한 스윙을 하다가 벙커에 볼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이미 평정을 잃고 있었다. 벙커에서 무려 5타 만에 그린에 올라온 것도 모자라 3퍼팅까지 하고 말았다. 파 5에서 무려 8타, 트리플 보기를 범해 5위에 그치고 만 샘은 가슴을 쥐어 뜯었다. 훗날 그는 “10킬로그램은 줄었고 머리는 다 빠졌다. 잊으려 하다가도 화가 치밀어 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고 통곡했다.

8년이 지난 1947년 우승의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골프장에서 샘은 마지막날 18홀에서 6미터나 되는 롱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루이스 워샴과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마지막 홀까지 루이스에게 한 타를 뒤지면서 8년 전과는 반대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확한 계산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끝에 회심의 버디를 했고 동타를 만들어 연장전에 돌입한 것. 다음 날 연장전에서도 샘은 마지막 3홀을 남겨놓고 2타를 리드, 고대하던 US오픈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그러나 불행은 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16, 17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해 내리 2타를 까먹으면서 다시 동타가 돼버렸다. 마지막 18홀에서 두 사람은 동시에 1미터도 안되는 퍼팅만 남겨놓게 됐다. 샘이 먼저 퍼팅 자세를 잡았다. 두 선수 모두 샘의 볼이 몇센티미터 뒤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샘이 먼저 퍼팅을 해야 하는것은 당연했다. 지켜보는 갤러리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옆으로 서서 하는 퍼팅이 아닌 샘 특유의 퍼팅 자세대로 그는 퍼터를 뒤로 뺐다. 순간 루이스가 “잠깐!”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는 두사람의 볼이 홀컵에서 거리가 비슷하니 자로 재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루이스는 왜 소리를 질렀을까. 샘이 퍼팅을 하려는 순간 버디를 성공시킬 것 같은 예감이 루이스의 머리를 스쳤을까. 그래서 그는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일까. 그렇게 잠시 경기가 멈춘채 거리를 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결과는 샘의 볼이 몇 센티미터 더 길게 나왔다. 당연히 처음대로 샘이 먼저 퍼팅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샘의 퍼팅이 들어갈 리 없었다. 그의 볼은 홀컵을 스치면서 비켜버렸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크게 땅을 치고 통곡을 해야 할 회한의 70센티미터 퍼팅이었다. 반면 기묘하면서도 저질적일수도 있는 꾀를 짜낸 루이스는 그대로 버디퍼트를 성공시켰고 결국 샘은 다시 한번 분투를 삼켜야 했다.

3번째 기회는 2년 뒤인 1949년의 시카고 메다이나에서 열린 대회였다. 샘은 이 경기에서도 한타 차로 캐리 미들코프에게 참피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마지막 4번째는 1953년 피츠버그의 오크몬드골프장이었다. 이번 대회는 샘의 라이벌이었던 벤 호건을 위한 시합이었다. 벤은 거의 죽을 수도 있었던 자동차 사고에서 회복돼,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 대회에서 샘은 첫날 부터 단 하루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던 벤에게 3일째 경기부터 한타 차로 따라붙으며 대 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벤을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벅찼다. 마지막 날 샘은 벤과는 무려 6타나 차이가 나는 2위를 기록했고,  US오픈을 향한 샘의 여정은 여기서 끝을 맺었다.

여성골퍼로서 세계 최고의 선수임에도 US여자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던 프로도 있었다. 낸시 로페즈는 LPGA골프사에 큰 획을 그은 선수지만 불행히도 US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다. 20세의 나이인 1977년 프로 데뷰후 78년 9차례 우승으로 올해의 신인왕, 올해의 선수상, 베어 트로피VARE TROPHY, AP사 올해의 여자선수 등 LPGA를 뒤흔든다. 20 여년 간  메이저 3승과 LPGA 48승으로 전설의 반열에 오르지만 낸시는 무려 4차례나 US오픈 정상에 오를 기회가 있었음에도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1997년 7월 12일 펌킨 릿지 골프장. 불혹의 나이를 맞은 낸시는 그의 생애 마지막으로 찾아온 US오픈 우승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3일 내내 60대의 스코어로 신기록마저 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4일째 앨리슨 니컬라스라는 선수가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낸시를 4타 차로 따돌리고 도망가는 앨리슨을 쫒기위해 낸시는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13번 홀에서 낸시가 버디를 한 반면, 앨리슨은 14번 홀에서 더블 보기를 기록해, 4타 차가 졸지에 1타 차로 줄어들어 낸시에게 역전의 기회가 왔다. 머리속에 순간적으로 트로피의 잔상이 지나갔다. US오픈이 혹시 그의 품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마지막 18번 홀. 팽팽한 긴장속에서 두 선수는 기싸움을 하며 모두 안전하게 세컨 샷을 그린에 올렸다. 앨리슨의 볼은 낸시의 볼보다 조금 더 뒤에 떨어졌다. 먼저 퍼팅을 한 앨리슨의 볼이  홀컵에 못미치며 60센티미터 앞에 멈춰섰다. 낸시의 차례였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낸시는 볼 앞에 섰다. 버디를 해야 동점으로 연장전에 갈 수 있다. 운명의 볼이 그린을 타고 홀컵을 향해 굴렀다. US오픈 무관의 한을 풀게 될 것인가. 볼이 라이를 따라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들어갈 것 만 같았다. 낸시는 환호의 제스처를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매정한 볼은 홀컵의 가장자리를 돌며 비껴가고 말았다. 낸시는 눈을 감았다.

4일 내내 60대 타수의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울분을 삼킨 낸시는 “너무나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이 대회에서 나는 이길 줄 알았다. US오픈의 여신은 나를 버렸지만나는 행복하고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낸시는 잠시 눈을 감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낸시가 8살 되던 해 아버지 도밍고는 딸에게 골프채를 잡도록 한 정신적 지주였다. 아버지는 어느날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한다. 그리고 낸시는 응답했다. ‘낸시, 너는 아마도 US오픈에서 이기지 못할 지도 몰라.’ ‘아빠. 나는 언젠가는 US오픈을 차지할 수 있을걸요.’

 

이인세 칼럼니스트  webmaster@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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