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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세의 골프인문학 (30)] 인류최초, 유일무이한 그랜드슬램의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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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경제뉴스 이인세 칼럼]  골프에서의 그랜드슬램은 그 해에 열리는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뜻한다. 골프에서 메이저 대회가 생긴 이래 1백58년이 흐르는 동안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퍼가 있을까. 타이거 우즈도 아니고, 잭 니컬라우스, 아놀드 팔머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유일하게 이룬  단 한 명, ‘골프의 전설’LEGEND OF GOLF로 불리는 보비 존스이다.

1930년 6월20일. 영국의 로얄 리버풀에서 디 오픈 마지막 날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3일 간 70-72-74타로 썩 좋지는 않은 스코어였지만, 보비 존스는 간신히 한타 차로 선두를 추격하고 있던 중이었다. 퍼팅에서 유난히 난조를 보이던 그는 8번 홀 파5에서도 3퍼팅으로 더블보기를 범하는 등 불안한 경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의 징크스는 그의 고질적인 불안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디 오픈의 트로피를 기필코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지난 달 이미 영국 아마추어 오픈은 우승한 터여서, 디 오픈만 차지하면 영국 아마추어와 프로를 동시에 차지하는 최초의 미국골퍼가 될 터였다. 훗날의 회고록에서 그는 언제부턴가 근육에서 이상징후가 온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으며 선수 생활을 오래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불안했고 몸은 아팠지만 골프보다 더 사랑했던 아내와 가족 생각을 하며 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침착하게 경기를 운영해 나갔다. 후반 9홀을 침착하게 75타를 기록하면서 2타 차로 결국 승리를 잡아냈다. 당시의 메이저대회는 목, 금요일에 각각 한 라운드와 토요일 오전 오후에 2라운드를 돌았으며 일요일에는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두 개의 영국트로피를 안고 미국행 뱃길에 오를 수 있었다. 열광한 미국언론들은 곧 이어 있을 US프로와 US 아마추어 오픈의 우승을 기대하며 그랜드슬램까지도 이룰 수 있다고 야단이었다.

1930년 7월4일 가장 큰 공휴일 중 하나인 독립기념일. 뉴욕 항구에서부터 브로드웨이로 이어지는 길엔 수 만 명의 환영 인파가 몰려들었다. 영국에서 디 오픈과  아마추어 오픈 등 두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고 귀국하는 보비 존스를 환영하기 위한 퍼레이드였다. 이 행사는 미국 역사상 골프선수로는 최초의 것이었으며 퍼레이드 차량만 28대였다. 시민들은 ‘우리의 전설, 우리의 신화, 보비 존스 만세!’라고 적힌 프랭카드를 들고 나와 그를 맞았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의 어려운 시절에서 그는 미국인들을 위로해 준 영웅이었다. 뉴욕의 내노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모두 나왔다. 퍼레이드는 뉴욕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아틀란타에서도 또 다른 카 퍼레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에서도 사람들은 “우리의 영웅 만세”를 외쳤다. 영국 아마추어대회가 생긴 이래  미국 출신의 우승자는 1904년 월터 트레비스와 1926년 제스 스웨트서 등 2명 뿐이었으며, 보비 존스가 3번째였다. 디 오픈에서는 미국 프로골퍼의 풍운아인 월터 하겐의 1928, 29년에 이어 보비 존스가 얻은 3년 연속 미국골퍼의 우승이기도 했다.

보비의 우승이 특별했던 것은 그 해 벌어지는 영국 아마추어와 디 오픈을 동시에 우승한 선수는 보비 존스가 최초였을 뿐 아니라, 모두들 그랜드슬램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였던 당시만 해도 미국골프는 영국에 많이 뒤져있었다. 영국인들에게는 정신적인 지주와도 같았던 디 오픈을 3년 연속 미국인들에게 빼앗겼으니 그들의 자존심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이었다. 반면 월터 하겐의 2연패에 이어 보비 존스까지 3년 연속 우승한 미국인들은 건방진 영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쾌거였다. 영국 올드코스의 젠틀맨스 클럽은 역사상 존재했던 가장 존경받는 4명의 골퍼를 선정했다. 골프의 신으로 불렸던 알렌 로버트슨과 디 오픈 3연패의 영 톰 모리스, 영국 아마추어 선수권을 2차례 석권했지만 제2차세계대전에서 전사한 프레드 데이트 등 3명의 영국골퍼와 함께 미국의 보비 존스를 마지막 위대한 선수로 선정했다.

7월10일 미국에서 열린 3번째 메이저인 US오픈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미네소타주의 인터라첸골프장. 전년도 챔피언이기도 한 보비 존스의 타이틀 방어가 아니라, 관심은 아직까지 누구도 기록하지 못했던 인류 최초의 그랜드슬램이었다. 연속되는 긴장감 속에 3라운드까지의 스코어는 71-73-68타, 비교적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 4라운드. 2위와의 간격은 5타 차여서 보비는 편하게 마지막 라운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던 마지막 라운드의 징크스인가. 갑자기 파3 홀에서만 모두 더블보기를 범하는 난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작 긴장한 쪽은 갤러리들이었다. 샷을 할 때마다 모두 숨을 죽여가며 홀 주변에서 갤러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와중에 2위로 달리던 영국의 맥도웰 스미스가 갑자기 2타 차로 따라붙었다. 3주 전 디 오픈에서도 보비에게 2타 차로 패한 그는 이번에는 기필코 영국으로 미국트로피를 가져가리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골프의 신은 하지만 보비 존스를 택했던가. 4라운드에서 75타로 부진을 보인 보비였지만 결국 2타 차로 우승컵을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보비가 골프 역사를 다시 쓴다, 인류 최초의 그랜드슬램은 나올것인가, 그 것은 아마도 신의 장난일 것, 신이 어느날 심심해서 그를 만들어 세상에 보냈다. ‘등등 언론들은 연일 대서특필이었다. 마지막 남은 US아마추어대회에 전세계는 술렁거렸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9월의 필라델피아 메리언골프장이 이번처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은 결코 없었다.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티박스에 선 보비는 오히려 침착해지는 평상심을 느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평온한 상태, 차라리 무아지경이었다. 그를 괴롭혔던 불안증 조차도, 담배를 한 홀에 서너대씩 피워야 하는 초조감 마저도 들지않았다. 그의 샷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보비는 매치플레이로 벌어진 마지막 라운드에서 유진 호만즈를 8대7로 누르고 마지막 관문마저 통과했다. 갤러리들의 함성은 메리언골프장 담을 넘어 필라델피아 하늘로 치솟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듯 보비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신이 점지해 주기 전에는 불가능했던 그랜드슬램을 이룬 그의 나이는 고작 28세였다. 끝까지 아마추어를 고집하면서 골프 생활 7년 만에 모든 것을 이룬 그는 홀연히 은퇴를 선언했다. 사람들은 그를 ‘골프의 신성’이라고 치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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