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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4 23:5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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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장보고와 개성상인 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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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
지난 3월 25일 정부조직개편의 일환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출범했다. 경제부처가 통상의 새 사령탑을 맡게 되면서 앞으로 통상 정책이 경제적 실익을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실현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무역의존도가 110%에 달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고, 경제의 대부분을 수출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 무역의 중요성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무역이 경제성장과 복지확대에 어떻게 기여하도록 할 것인가에 관한 ‘통상’의 미래 전략이다.

최근 세계 무역의 지리적 구도는 100여 개의 나라가 각기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공동으로 맺은 약속인 세계무역기구(WTO)는 점차 영향력을 잃고 있다. 대신 2개 또는 복수 국가 간 약속인 자유무역협정(FTA)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세계 무역 지도는 전형적인 지역할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WTO 체제에서 수출을 크게 늘린 한국은 이에 안주해 FTA가 주도하는 새 무역 구도에선 ‘지각생(late mover)’으로 출발했다. 2003년 WTO 회원국 가운데 FTA를 한 건도 체결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몽골뿐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칠레·싱가포르 등과 FTA 체결로 시동을 건 후 현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EU·미국과 공히 FTA를 체결하는 등 총 47개국과 협정을 맺은 FTA 선도국(first mover)이 됐다. 그동안 ‘동시다발적 FTA 전략’이라는 기조 아래 FTA를 추진해옴에 따라, 경제적 실익 고려가 다소 미진하였다는 우려도 있지만, FTA를 통한 경제영토 확대가 금융위기 극복과 무역 1조 달러 달성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그간 미국·EU·중국 등 강대국들은 경제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FTA를 활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정치적 동맹국이 자국의 거대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준 대신 자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국가와는 협정 체결을 꺼린 것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크게 변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두 축인 중국과 미국은 다수국이 참여하는 거대 FTA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주변 국가를 상대로 역내 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을,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각각 주도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전 세계 경제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과 EU는 지난달 양국간 FTA를 통해 초거대 시장을 탄생시킬 원대한 구상에 합의했다. 한국의 전략적 계산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 무역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치열한 정면공격과 방어 뿐 아니라 측면공격과 다른 나라들과 합종연횡 등 다양한 전략을 갖춰야 할 시점이 왔다. 미래 통상정책의 근간이 될 ‘신 통상 로드맵’의 수립이 필요한 이유다. 이 로드맵에는 우리를 둘러싼 대외통상환경 변화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토대로, 우리 산업 각 분야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냉철한 분석, 미래 대한민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협상 전략이 포함되어야 한다.

통상의 새 무대를 개척하는 일도 우리의 과제다. 세계 통상의 또 하나의 큰 흐름은 동남아·중동·중미 등 신흥국의 부상이다. 이들은 높은 성장 잠재력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에게도 수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자국의 경제발전을 가속화하려는 신흥국은 한국에게 경제 협력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우수기업들이 자국에 와서 공장도 짓고, 생산기술도 전수해 주길 바라고 있다. 우리로서도 우리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수 있으므로 신흥국과 경제협력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신흥국과 통상은 한국형 리더십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과거 대표적인 국제원조 수혜국에서 ‘원조를 주는’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저력으로 신흥국과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는 리더가 될 차례다. 마침 새로운 WTO 사무총장 선거에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계가 통상 무대에서 한국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한국의 아픈 근대사에는 안타까운 통상의 역사가 함께 한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체제 하에 서구 열강과 활발한 통상으로 자본주의 근대국가 수립에 성공한 반면, 쇄국정책으로 근대화의 흐름을 놓친 조선은 식민 통치를 피할 수 없었다.

1세기 이상을 보낸 지금, 새로운 세계 통상환경은 또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다행히 시작은 나쁘지 않다. 우리 산업의 기초 체력은 탄탄히 쌓여 있고, 정부도 그 간 많은 FTA를 통해 누구 못지않은 협상 능력도 갖추고 있다. 신라의 장보고는 세계를 무대로 창의적인 통상 전략을 세워 부를 쌓았고, 고려의 개성상인은 상업의 합리적 경영과 협상술 등 그들만의 전문성을 발휘해 무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산업의 전문성과 통상의 전략을 결합해 대한민국의 통상 정책을 책임지게 된 산업통상자원부의 새 역할은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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