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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키제도와 정의의 여신 ‘디케’

[칼럼]최용철 조달청 시설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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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키 계약방식(Turn Key Base)은 흔히 일괄계약 방식(Design-Build)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발주자가 하나의 도급자와 설계 및 시공을 수행하는 계약을 말한다. 턴키(Turn Key)란 열쇠를 돌린다는 뜻으로 건축주는 열쇠를 돌리고 집에 들어가기만 한다는 말이다. 용도에 맞는 설계에서 시공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건축주에게 인계를 하니 건축주 입장에서는 책임소재가 명확하고 관리가 수월해지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설계와 시공이 복잡한 대형공사의 경우 발주기관이 선호하는 계약방법 중 하나다. 턴키방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시설물로는 아시아 최대 축구전용구장인 상암경기장, 국내 최초 곡선 사장교인 세풍대교, 세계 최장 1주탑 현수교인 단등교 등을 들 수 있다.

수년간 경기침체로 인한 건설공사 물량감소로 건설업체는 어느 때보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사규모가 큰 턴키입찰에 참여하는 업체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최저가낙찰제 등 일반입찰이 발주기관이 제시한 설계를 가장 경제적으로 시공할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인 반면, 턴키입찰은 주어진 예산 내에서 최상의 설계를 제시하는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한다. 다시 말해서 설계점수(설계심의)와 가격점수(가격입찰)를 합산한 점수가 가장 높은 자를 낙찰자로 결정한다. 입찰자가 입찰 전에 공사규모에 따라 수십억 원의 설계비(총공사비의 약 3%)를 투입하여 입찰에 참여해야하는 구조적 특성상, 입찰이나 설계심의과정에서 때때로 비리가 발생하곤 한다.

정부는 턴키심의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리에 연루된 건설업체는 최대 2년간 턴키공사 수주를 금지하고 있다. 심의위원의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 측 심의위원을 확대하는 등의 대응책을 내놓았다. 과연 턴키심의 관련 비리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건설업체와 심의의원에게만 있는 걸까? 건설업체가 바라보는 턴키심의의 공정성은 어느 정도일까? 2011년 초 국토해양부가 건설업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턴키제도의 공정성 개선효과에 대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2.9%가 중앙부처의 심의공정성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지자체의 경우에는 46.4%가 제도 개선 후 오히려 공정성이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누가 누구를 탓하고 책임을 돌릴 처지가 아닌 상황인 듯하다.

조달청은 제도개선과 더불어 심의결과를 건설업체가 수긍할 수 있도록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해 설계심의과정을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고 있다. 심의위원별 2단계 차등평가(심의위원별로 평가점수에 따라 입찰자 순위를 정한 뒤 순위별로 일정점수의 차등을 두도록 하는 평가방법)를 통해 특정업체에 매우 높거나 낮은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또한 심의위원별 평가점수와 사유서 등 평가결과를 조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감시단이 설계심의를 참관해 심의과정을 모니터링 하는 시민참여제를 도입했다. 앞으로 설계심의 자격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을 시민단체에서 추천을 받아 설계심의 분과위원 명부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설계심의의 공정성과 불법로비의 관계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감안하면 발주처와 건설업체, 그리고 심의위원 등 턴키제도의 운영주체들이 스스로 턴키제도의 근간을 허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비록 일부에서 무용론, 폐기론까지 제기하고 있지만 턴키제도가 그간 건설기술 수준과 대형 구조물 수행능력 향상 등 우리나라 건설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벗고 턴키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발주기관과 건설업계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턴키제도는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공공 시설물에 활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라 할지라도 이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된다. 그리스신화에 정의의 여신인 디케(Dike)는 오른손엔 칼을,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저울은 공정함을, 칼은 불의에 대한 단죄를 의미한다. 눈가리개로 눈이 가려진 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치우침 없이 심판하는 것을 뜻한다. 심의위원, 발주기관, 그리고 건설업체 모두 디케가 주는 의미를 마음에 새겨둬야 하지 않을까? 사사로움을 떠나 공정성을 유지한다면 디케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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