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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무버’의 조건, 표준 선점

[칼럼]서광현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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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우리나라 성장 전략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는 말이다. 기존 패러다임을 모방에 기초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 규정하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창조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몇 해 전만 해도 ‘패스트 세컨드’가 유행했었다. 무조건 최초나 최고가 되려고 하기보다 재빠른 2등으로 출발하여 최강자의 자리를 노리라는 의미다. 변화가 빠르다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패스트 세컨드’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표현이 옳다. 역사상 유래 없이 반세기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경제력 10위권에 도달한 우리나라이지만 모방만으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덕분인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는 정부와 기업 등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퍼스트 무버의 필수조건이 무엇일까?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기술 개발, 내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특허권, 마지막으로 시장의 룰이 되는 표준 확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져야만 후발 주자에게 추월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정부의 R&D 예산은 총 68조원에 이른다. GDP 대비 비중은 올해 세계 3위, 연평균 증가율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덕분인지 특허출원은 세계 4위, 과학기술 논문수는 12위에 올랐으나, 이러한 양적 증가가 국부의 창출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술무역수지 적자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R&D 투자의 효율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표준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2013년도 표준 R&D 예산이 18.8억 달러(2조원)로 총 R&D 예산 1422억 달러(161조원) 대비 1.3%로 책정된 반면 우리나라는 400억 원 규모로 총 R&D 예산 대비 0.25% 정도이다. 국제표준화 무대에서 ‘패스트 세컨드’ 조차도 버거운 수준이다.

세계 무역의 80%가 표준의 영향 하에 이루어지며 EU내 무역의 76%가 EU표준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즉, 세계 무역과 표준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우리 기술과 제품의 세계 시장 확보를 통한 무역 2조 달러 달성을 위해서 국제표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미래성장산업에 대한 국제표준의 대응은 더욱 중요하다. 현재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과 같은 전력대란의 대안이자 신재생에너지 활용 확대 및 스마트그리드 구현의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Energy Storage System)의 국제표준을 주도하고자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International Electrotechnical Commission)에 신규 기술위원회(TC, Technical Committee) 구성에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 경제산업성은 우리나라 지식경제부에 협조를 요청하였으며, 이는 ‘에너지 저장 산업 세계 3대 강국 도약, 세계시장 점유율 30% 확보’라는 우리 정부 정책 목표 달성 및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의 세계시장 선점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으로 한·일 스마트그리드 협력 회의를 3회에 걸쳐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적 국제표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실상 표준에 대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장기간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이 자체적으로 표준화를 추진하기 힘들다. 또한 표준화에 따른 기술 공개를 우려하는 시선이나 경쟁자의 추격을 돕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 역시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러나 책 등에 나온 내용대로 설계한다고 해도 제품 성능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표준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제품이나 기술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시대다. 경쟁자가 따라올 즈음이면 새로운 단계의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다. 국제표준화를 주도할 기술력만 있다면 오히려 국제표준은 세계 시장을 선점하는 첨병이 될 것이다.

요즈음 표준특허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다. 특허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표준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표준의 중요성에 비해 우리나라의 인식은 아직 미흡하다. 표준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기에 우리가 개발한 소중한 기술이 사장되지 않으려면 국제표준화가 중요하다. 이제부터라도 산·학·연·관 모두가 표준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기술 개발만큼이나 표준화 역시 하나의 창조다. 우리나라가 창조적 국제표준화를 통한 진정한 ‘퍼스트 무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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