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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 비평] 시청률 40% ‘가정부 미타’…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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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본대중문화계 최대 이슈는 12월21일 결정됐다. 니혼TV 드라마 ‘가정부 미타’ 마지막회가 방영된 날이다. 이 마지막회 방영분으로 ‘가정부 미타’는 AKB48, 아시다 마나, 드라마 ‘마루모의 규칙’, 한류 열풍, 영화 ‘근사한 가위눌림’ 등 지난 한 해 동안 벌어진 각종 문화현상들을 한순간에 제쳤다.
 
마지막회 시청률 40.0%. 21세기 들어 드라마 최고시청률이다. 역대 최고시청률로도 3위에 랭크되는 기록이다. 한 해 드라마 최고시청률이 대부분 20~25%대에서 결정되는 일본방송계 흐름으로 볼 때, 한국 실정으론 거의 60~70%대 시청률이 나온 셈이다. 한 마디로, ‘모래시계’ ‘사랑이 뭐길래’ 급 드라마가 십 수 년 만에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가정부 미타’는 대체 어떤 드라마였을까. 한국 기준으로 따지면, 이른바 막장가정에 막장가정부가 들어와 펼치는 막장드라마다.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르고 그 탓에 어머니가 자살한 가정에 일견 로봇 같은 희한한 가정부가 들어온다. 그러면서 이 가정에 일대풍파가 일어난다. 중학생 큰딸은 남자친구와 자고 들어오고, 큰아들은 폭력으로 경찰에 불려간 뒤 집에 들어와 가정부 옷을 벗긴다. 작은아들은 가정 일에 무관심한 전형적인 나 홀로 우등생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딸은 2층 베란다에 앉아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다 진짜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가정부는 가정부 나름대로 식칼을 들고 큰딸을 찌르려 덤벼든다.
 
이런 드라마가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을까. 물론 이 정도 문화현상이 일어나면 그 원인도 다양한 지점에서 발견되곤 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가장 먼저, 장르상 이점이 있었다. 근래 일본 드라마계는 가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서서히 트렌드 중심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2009년 2분기 니혼TV ‘사랑해~용서’와 후지TV ‘하얀 봄’이 함께 큰 반향을 일으킨 이후부터 바로 올해 2분기 후지TV ‘마루모의 규칙’ 현상까지 이런 흐름은 점차 강화되는 추세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젊은 층이 시청률 집계에서 빠져나가버린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장년층이 관심 갖는 가정문제가 가장 ‘핫’한 소재로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가정부 미타’의 40.0% 시청률 정도면 젊은 층도 반드시 가세해줘야 나오는 수치긴 하지만, 일단 중장년층 지지를 바탕으로 선풍을 일으키자 후발적으로 젊은 층도 따라붙었다고 봐야 옳다.
 
또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10아시아 12월20일자 칼럼 ‘<가정부 미타>, 3.11 동일본 대지진이 탄생시킨 슈퍼 히어로’는 “미타는 명쾌하다. 다양한 문제들을 도덕이니, 사랑이니, 인간애 등으로 호소하지 않고 가정부의 능력으로 해결해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보수를 요구한다”는 일본 칼럼니스트 나카무라 슌이치의 분석을 인용하면서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간의 한계를 실감한 일본 사회는 막연한 포부와 용기가 아닌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물론 꼭 그렇게만 보긴 힘들지만, 어쨌든 도호쿠대지진과 그 직후 원전사태 영향권 하에서 일어난 현상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도호쿠대지진 직전의 대재앙이었던 1995년 한신대지진 당시에도 ‘가정부 미타’와 유사한 드라마, 즉 어두운 사회파적 분위기의 막장드라마들이 크게 히트한 바 있기 때문이다.
 
1995년 평균시청률 20%대를 넘어선 5편의 히트드라마들은 ‘집 없는 아이 2’ ‘미성년’ ‘사랑한다고 말해줘’ ‘인생은 최고다’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 등이었다. 이중 히트작 속편 ‘집 없는 아이 2’는 학원물이었음에도 교내 왕따, 근친상간, 감금, 각종 가정폭력이 넘실댔다. 노지마 신지 각본 ‘미성년’ 역시 같은 청춘물이어도 노지마 특유의 어두운 색채가 역력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귀가 들리지 않는 화가와 극단 연습생 간 무거운 사랑 얘기였다. 기무라 타쿠야 초기작 ‘인생은 최고다’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청년과 복싱선수 출신 중년 사채업자 사이 묵직한 우정 얘기였다. 심지어 아이돌스타 마츠모토 준이 출연한 만화 원작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는 매화 잔혹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결국 해석은 좀 더 냉소적으로 행해질 수밖에 없다. 대재앙과 극심한 경제 불황이란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놓고, 1995년의 일본대중과 2011년의 일본대중은 뭔가 구원받고자 하는 의지라기보다, 자신들보다도 더 비참하고 어려운 처지의 막장인생들을 지켜보면서 카타르시스와 함께 상대적 우월감과 안도감을 얻고자 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런 대중심리가 사회파적 막장드라마의 대박 무드를 형성했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 있다.
 
한편 드라마 설정 자체가 일본사회 스트레스와 연결된다는 평가도 있다. 김상하 프리라이터의 제이피뉴스 12월23일자 칼럼 ‘가정부 미타는 일본인이 바라는 히어로?’는 “‘가정부 미타’는 콩가루 가정의 사정을 현실감 없는 전개로 풀어가는 막장드라마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미타 아카리’라는 초인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면서 “그런 히어로가 해주는 일은 매우 단순하다. 내가 거스를 수 없는 사회의 룰에 대신 반항해주고, 내 입으로는 말하기 힘든 혼네(본심)를 대신 말해주고, 나는 쉽게 해낼 수 없는 위험한 일을 대신 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여주고, 무언가를 요구하면 질질 끌지 않고 빠르게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꽉 막힌 일본사회의 스트레스, 무엇이든지 느리게만 처리되는 행정, 하고 싶은 말을 쉽게 드러내서 이야기 안 하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도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몰라서 생기는 불안이 만들어낸 히어로상”이라고 정의 내렸다.
 
상당부분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그런데 그 히어로가 ‘가정 밖’에서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사실 이런 식의 설정은 일본문화시장에서 흔히 등장하는 설정이다. 외부에서 온 이방인이 가정 내 각종 위선을 벗겨내고 추악한 일면들을 발가벗겨 놓은 뒤 진정한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놓고 사라진다는 설정이다. 이미 일본 고전설화에서부터 수차례 등장한 바 있으며, 근래에도 얼마 전 타계한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1983년작 ‘가족게임’, 이시이 소고 감독의 1984년작 ‘역분사가족’ 등이 같은 설정을 되풀이했었다.
 
이는 의외로 일본문화는 물론 일본사회나 역사 차원에서도 꽤나 중요한 부분이다. 일본인은 기본적으로 ‘자신들 문제’를 ‘자신들 내부’에서 해결하는 일에 절망을 느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외세의 침입을 ‘자신들 내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온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 다시 ‘일본 밖’에서 ‘일본 안’의 딜레마를 해결해주러 온 수퍼히어로물 ‘가정부 미타’가 성공한 참이다. 어쩌면 근래 한류 열풍도 이 같은 일본 내 사회심리가 반영된 현상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끝으로, ‘가정부 미타’ 성공의 대전제가 된 부분을 짚어보겠다. 근래 들어 일본드라마 시청률 전체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년 간 일본 민방드라마는 단 한 편도 평균시청률 20%대를 넘겨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벌써 2편이나 나왔다. 2분기의 ‘JIN-진 2’와 ‘가정부 미타’다. 거기다 요즘은 평균시청률 15%만 넘어도 분기 1위를 차지하는 현상이 지속됐다. 1위가 15%를 못 넘은 분기도 있었다. 그런데 당장 지난 4분기만 해도 15%대 이상 드라마는 ‘가정부 미타’ 등 총 5편이나 나왔다.
 
지금 일본대중은 다시 TV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시점임에 이목이 쏠린다. 특히 도요타 사태 이후 TV시청률이 전반적으로 상승중이란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밖에 나가 각종 레저를 즐길만한 경제여건이 안 되니 다시금 집으로 모여들어 ‘공짜’ TV에 집중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정부 미타’도 그런 전반적 상승기류에 올라탄 경향이 짙다.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한국 역시 많건 적건 ‘가정부 미타’를 둘러싼 일본 내 환경적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물론 ‘외부로부터 온 이방인’ 따위 일본특유의 사고방식은 없지만, 첫째 중장년층이 시청률의 중심이 되고 있고, 둘째 경제 불황이 지속돼 막장적 분위기가 브라운관 안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셋째 레저생활을 충분히 즐길 만큼 대중의 경제여건이 좋진 않다는 점 등에서 모두 같다.
 
그런데 왜 한국에선 ‘가정부 미타’ 같은 문화현상이 일어나질 않는 걸까. 위 세 가지 공통점 중 마지막, ‘레저생활을 충분히 즐길 만큼 대중의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의 문화소비패턴이 일본과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결국 젊은 층이 TV 앞으로 모여들어 40.0%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올려줬지만, 한국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 층은 일본엔 거의 없는 인터넷 웹하드 불법 다운로드로 인기 드라마들을 시청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토렌트 사이트다. 그게 아니면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다. 그런 식으로 계속 불법시장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시청률 10위권은 늘 중장년 취향 드라마들이 포진하게 되는 것이고, 그나마도 계속 시청률이 떨어지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다.
 
어떤 식의 사회현상이건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키기만 한다면 이는 반드시 문화현상으로 옮아가게 돼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대중문화산업은 계속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사회현상을 받아들이고 이를 대중문화로서 포장해가며 시대분위기에 적응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선 그런 통로가 막혀있다. 특히 TV드라마 시장에서 그렇다. 불법 인터넷 다운로드 시장이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흐름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시대정서를 잘 꿰맞춘 ‘가정부 미타’ 같은 콘텐트가 나와도 한국에선 절대 다시는 ‘모래시계’ ‘사랑이 뭐길래’ 급 히트작으로 거듭날 수가 없다.
 
결국 ‘가정부 미타’ 성공은, 아무리 모든 틀이 다 잘못 꿰어져 있어도, 기본적으로 ‘투명한 시장’을 보유하고 또 유지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안정적인 바탕이 되는지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한국대중문화산업이, 특히 TV드라마산업이 ‘가정부 미타’ 현상에서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투명한 시장’의 위력과 위용이다.
 
그런 점에서 2012년 새해 한국방송시장의 캐치프레이즈이자 기조는 ‘공정한 방송’과 함께 ‘투명한 방송시장 확립’으로 맞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정한 방송’이 두 차례 큰 선거를 맞이하게 된 한 해의 절대절명 목표라면, ‘투명한 방송시장 확립’은 이제 막 종합편성채널이 4개나 더 들어선 방송전국시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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