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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채 칼럼]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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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채 교수
정순채 교수

정부의 오랜 근절 노력에도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피싱조직의 범행 수법이 기술적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 중국 등지에서 국제전화로 범행하던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2009년 수신자 전화에 ‘국제전화 발신’ 표시를 조치하자 인터넷 전화사용으로 수법을 변경했다.

2011년에는 사기 이용 계좌에 지급정지를 취했으며, 다음 해엔 현금자동입출금기 지연인출제도와 계좌 간 지연이체제 시행으로 범죄수익 수금이 어렵도록 조치했다. 그러자 피싱조직은 악성코드를 심은 문자메시지로 피해자 휴대폰을 해킹해 직접 돈을 가로채는 스미싱 수법을 결합해 공격했다.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는 정부 정책과 이를 돌파하는 사기조직 간의 공방전이 계속됐다.

최근엔 오픈 뱅킹이 보이스피싱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2019년 말부터 시행된 오픈뱅킹은 금융기관 애플리케이션으로 모든 보유 계좌를 조회하고, 이체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다양한 피싱 수법으로 빼낸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확인 절차가 느슨한 알뜰폰을 개통한 뒤 비대면 계좌를 개설해 오픈뱅킹을 이용하는 수법이 만연한 상황이다. 피해자는 예금 이체 사실을 곧바로 알아채지 못해 피해 구제를 받기도 어려워진다.

피해자가 의심 없이 전화를 받게끔 유도하려고 발신 번호를 ‘010’으로 바꾸는 번호 변조 수법도 성행하고 있다. ‘심박스’라는 이 장비는 휴대폰 유심카드를 다수 장착해 범행에 실제 사용되는 인터넷 전화번호를 다양한 이동통신사 번호로 변조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명의도용 알뜰폰 개통으로 유심카드를 다량 확보하기도 한다.

콜센터가 주로 중국이나 필리핀, 태국 등 해외에서 운영되는 건 변함이 없으나 보이스피싱 콜센터 조직원의 화술과 작전은 정교해지고 있다.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떠듬떠듬하는 어눌한 음성의 중국 동포 비중이 높았던 초기와 달리 현재 콜센터 조직원 대부분은 한국인이다. 발음이나 억양으로 보이스피싱 여부를 판별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들 피싱 조직은 조직적 훈련을 거쳐서 범행에 투입되기 때문에 세련된 화술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 보이스피싱 녹음 파일을 분석한 결과 사기범 음성은 일반인에 비해 안정적이고, 또렷해 신뢰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금, 이제, 진행, 일단, 오늘, 먼저’ 등 한정된 기간을 강조하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여 피해자의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를 낚을 ‘대본’도 치밀하다. 시나리오팀은 국내 사정에 밝은 조선족이나 범죄 경력이 있는 한국인이 주로 들어간다. 이들이 국내 사정기관 구조와 행정시스템 등을 대본에 현실감 있게 표현한다. 코로나 유행기엔 재난지원금 지급을 운운하는 식의 기민한 수법 개발이 이루어졌다.

조직 소탕의 어려움도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지 않는 한 원인이다. 총책이나 콜센터, 전산팀 같은 ‘몸통’은 주로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어 검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검거되는 수거책이나 전달책과 같은 말단조직은 사기방조죄 등으로 ‘선의의 전과자’가 양산될 우려도 있다. 심각한 취업난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에 속는 사회병리적 현실까지 감안하는 대응책이 필요하다.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창과 방패의 싸움’은 계속 진행형이다.

정순채 동국대학교 융합교육원 겸임교수·경희대학교 사이버대 객원교수·법무법인 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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