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김근태 상임고문 합병증으로 30일 별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암울한 시기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5시31분께 향년 6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 고문은 부인 인재근씨와 자녀 병준·병민씨, 민주당 이인영 전 최고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진다. 발인 시간과 장지는 이날 오전 중 결정될 예정이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김 고문은 1947년 2월14일 경기 부천에서 태어났다.
 
196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김 고문은 학생운동에 뛰어든 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2년간 수배를 받는 등 20여년간 시국사건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수배와 투옥을 반복해왔다.
 
결국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5년 9월4일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됐고 서울 용산구 남영동 분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씨로부터 8차례의 전기고문과 2차례의 물고문을 당했다.
 
1995년 정계에 입문한 김 고문은 1996년 서울 도봉갑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7대까지 내리 3선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 당시 고문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그는 후유증으로 비염과 축농증에 시달렸으나 고문 트라우마로 인해 치료를 미루다가 2006년 수술을 받았다.
 
특히 2007년 12월 경직·느림·자세 불안정·손 떨림 등의 증상을 보이는 파킨슨병 확진을 받았다.
 
이후 약물을 복용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으나 지난달 29일 정밀진단 결과 뇌정맥에서 혈전이 발견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29일 합병증이 진행되면서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김 고문은 결국 30일 오전 숨을 거뒀다.
 
저작권자 © SDG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지속가능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