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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면 어떻고 스님이면 어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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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인연으로 맺어진 목사님 한 분이 생각난다. 대학 시절 자주 찾던 교회의 목사님을 지금은 불가에 귀의한 수행자의 신분으로 법의를 입은 채 찾아가 뵙곤 한다. 목사님과는 대학 시절 기독교 학생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청년의 죽음으로 인해 가까워졌다. 캐럴이 은은히 울려 퍼지던 성탄 전야의 교회에서 사랑하던 사람과의 결별에 괴로워한 나머지 음독 자살로 세상을 떠난 한 청년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 학생은 안경 낀 눈이 유난히 맑고 진실해 보였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지체 부자유인인 그는 같은 학교 여학생과 깊은 사랑을 하였으나 장애인이라는 여자측 부모의 반대로 고민하다 끝내 성탄 전야에 조용히 생을 접은 것이다.

그날 약을 마신 청년을 발견하고 그가 눈을 감을 때까지 모든 예배 행사를 접어 둔 채 너무나도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신 목사님의 따뜻한 사랑을 잊을 수 없다. 비록 이승에서의 삶은 고통이었지만 다음 생에는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한다는 절규 섞인 마지막 음성을 들으며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된 청년의 몸을 씻어 주며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도록 지켜 주시던 모습은 바로 사랑이었다.

지금은 노구의 몸이지만 가난하고 부족한 자들을 위해 사랑의 삶을 사시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다. 종교의 길은 서로 다른 길이 되었지만 사랑과 자비심만은 하나이기에 지금도 내게는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남아 있다.

그후 청년이 사랑하던 여인마저 몇 년 후 골수암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목사님 꿈에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10년 전 꼭 한 번 내 꿈에도 두 사람이 나타난 적이 있어 나는 그들을 위해 위령제를 올려 주었고 그 자리에는 목사님도 함께 참석하여 한 많은 청춘 영혼을 위로해 주었다.

세계 역사상 일어났던 수많은 종교 간의 분쟁과 전쟁이 말해 주듯 종교의 생명은 바로 사랑과 자비심이며 이것 없이는 그 어떤 종교도 빛을 잃고 만다. 사랑과 자비심이란 바로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보살피는 정신인 것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옳다는 편견을 가질 때 그것은 이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참된 종교인이라면 신 안에 있거나 신 밖에 있는 사람, 지옥과 짐승 세계에서 고통받는 아귀들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이라고 본다. 선악을 초월하고 신과 사람을 초월하는 사랑으로 악마까지도 행복한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넉넉한 마음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죄악은 삶의 현상이면서 삶의 사건들이다. 사바 세계란 선과 악, 죄업의 사슬에 서로 얽힌 세계인 것이다.

성인들께서는 착하고 좋은 모습만으로 사람을 구제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악인의 모습으로 악인을 제도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악인의 모습으로 착한 자를 제도하기도 한다. 종교의 참의미를 조직과 힘을 키우는 데 기울이지 말고 종교와 신분을 초월하여 그들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나아가 나고 죽는 윤회의 흐름을 길이 쉴 수 있도록 하는 목표에 둘 때 진정한 종교인의 삶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모쪼록 모든 종교 간의 갈등이 사라지고, 죽지 않고 마르지 않는 빛과 생명의 씨앗들이 인간이 머무르는 곳곳마다 아름다운 종교의 꽃들로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계속> 물처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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