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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세의 골프 인문학(54)] 연재 후기
  • 이인세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0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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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경제뉴스 이인세 칼럼]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버진 아틀랜틱 3007편으로 한시간 여 만에 목적지인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공항을 밟았다. 여기까지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목적은 단 하나, 목동들이 골프를 쳤던 그 초원을 밟으면서 6백여 년 발자취를 역추적해보고자 함이었다.

템플기사단이 누워있는 런던 템플교회

더불어 골프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든 템플 기사단의 후손인 프리메이슨들이 수 백 년 동안 갈고 닦은 과정을 추적하기 위함이었다.

마침 세인트 앤드루스에서는 2015년 144회 디오픈이  열리는 중이었다. 일생에 한번 디 오픈을 관람하거나 올드코스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인데, 하물며 디 오픈이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해에 이 곳을 방문한다는 것은 생애 가장 큰 축복일 수밖에 없다.
 
에딘버러에서 한시간 반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세인트 엔드루스로 향해 나선 시간이 새벽 6시, M90하이웨이는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 특유의 날씨를 반영하듯 추적추적 비마저 흩뿌리고 있어 도로사정은 좋은 편이 아니다.

세인트앤드루스시로 빠져나오면서 만난 왕복2차선의 A91시골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맞은편에서 지나가는 차들은 아직도 좌측통행에 어색한 나의  손에 땀이 맺히게 만든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나는 중세의 빛바랜 시골 마을들은 나를 천년 전 중세로 끌어들인다.

쿠파CUPAR 마을에 내려 돌로 만든 보도블럭을 잠깐 걸으면서 편의점에서 쓸데없이 주점버리를 사는 나를 욕할 사람이 있을까. 대여섯 마을을 더 지난 뒤 다다른 올드코스의 전경은 나를 전율케했다.

북해의 파도가 미역 등 여러 해초류를 밀어넣어 백사장은 지저분하지만, 이 곳은 범접할 수 있는 백사장이 아니다. 6백 여 년의 세월 동안 어부들은 만선의 기쁨으로 이 곳에 배를 묶은 뒤  골프를 치면서 뭍으로 나왔고, 아낙들은 50미터 정도 되는 백사장 뒤의 초원이 시작되는 구릉지대에 빨래를 널어놓았다. 그 뒤로 천년 전의 건물들이 시커멓게 그을린 것처럼 자리 잡고 있는 세인트 앤드루스시의 전경은 차라리 시대를 넘나든다.

더스틴 존스 등 선수들이 퍼팅 연습을 하고 있는 첫 홀 앞에는 R&A건물이 엄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의 안중에 선수들은 없다. 웅장한 돌로 지어진 건물만이 나를 흥분시킬 뿐이다. 회원들만 입장이 가능한 곳, 그 안에서 프리메이슨이자 젠틀맨스멤버들이 모여 수백 년 간 골프를 발전시키지 않았던가.

10미터 남짓한 길 건너엔 6백 년의 발자취가 증거물로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낮은 지대에 비밀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박물관 내부는 나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소 어둡고 좁은 답답한 내부였지만 진열장안에 장식된 골동품들은 어느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책에서만 보던  희귀한 골프의 보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영국박물관장인 안젤라와의 조우는 나를 흥분시켰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골프 6백년사 집필관계로 만나기로 한지가 5년 전이었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박물관 2층에서 그녀를 만났고 사과부터했다. 손사래를 치며 기꺼이 5년 전의 약속처럼 그녀는 나를 맞았고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골프에 대한 환담을 나누었다. 어느덧 북해의 바닷가에는 노을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저녁 6시만 되면 모든 일정들이 끝나고 선수들은 저녁을 위해 숙소로 향했지만 할 일이 남았다. 도보로 20여분 떨어진 공동묘지, 불세출의 골프 영웅 톰 모리스 부자와 골프의 신이라 불리는 알렌 로버트슨의 묘소를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바다를 뒤로하고 시가지로 올라가는 길옆에는 이전의 골프골동품점이 아니라 식당으로 변해있다. 전통 스코틀랜드 체크무늬 치마 복장을 한 파이프 연주자의 노래를 뒤로하며 울퉁불퉁한 중세의 도로를 걷는다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무덤앞에는 골프 선조들에게 경배를 드리는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런던 웨스터민스터에 있는 퀸 메리의 대리석 무덤

스코틀랜드 골프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라진 5홀짜리 리스왕실전용골프장의 흔적이라도 찾아나섰지만 주변에는 중국이민자 빈민촌으로 낙후되어 있었고, 코스가 있었을 법한 자리에는 자그만 카지노가 들어서 있을 뿐이었다. 실망과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홀리루드궁전으로 향한 이유는 남편 장례식날에 골프를 쳤고, 그 죄로 국민들에게 추방을 당해 목이 잘린 여왕, 퀸 메리를 보기 위함이었다. 에딘버러 시내에 자리잡은 고풍스런 궁전의 2층 메리여왕의 방에는 그녀가 생전에 사용했던 모든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그녀의 묘는 이 곳이 아니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안치되어있었다.

런던까지는 기차로 8시간, 에딘버러웨이블리역에서 해안을 따라 런던 킹스역에서 내려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나는 그 길을 택했다. 그리고 영국의 모든 왕들이 안치되어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한쪽 방에서 흰 대리석으로 조각된 전신 모습의 묘소앞에서 나는 소리없이 경배를 했다.

히드로에서 뉴욕행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유난히 파란 대서양을 보면서 영국의 골프가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갈 때를 회상했다. 당시에는 배를 타고 스코틀랜드의 골프 선구자들이 이렇게 대서양을 가로질러 신대륙 미국에 골프를 전파했을터였다. 내 가슴속에는 골프 6백년의 자취를 찾기 위한 지난 10여일의 일정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영국에서의 리서치 기간 동안 무엇보다 중요했던 여정은 댄 브라운이 다빈치코드에서 기술한 장소들을 역추적하는 것이었다. 골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다빈치코드, 그러나 책속에 등장하는  런던의 템플사원과 기사단,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아이작 뉴튼, 그리고 에딘버러의 로슬린성과 프리메이슨 등은 나를 전율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1천년 전 십자군 전쟁의 템플 기사단들이 돌연 자취를 감추었고 그 은둔의 장소가 로슬린성 인 것으로 결말짓는다.

그렇다면 수 백년이 흐른 17세기 스코틀랜드 사회에 홀연히 등장한 싱클레어경이 누구인가. 바로 당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프리메이슨과 그 수장인 로슬린성의 성주로서 현대 골프의 근간을 이룩한 인물이 아닌가. 댄 브라운이 주장하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 ‘성스러운 성배’를 뜻하는 SAINT CLAIR, 성 클레어라고 명명된 로슬린의 초대 성주일수도 있다는 가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프리메이슨들의 수장인 후손 싱클레어SINCLAIR가 왜 그렇게 골프에 매진했는지를 나는 풀고 싶었던 것이다.

차를 몰고 에딘버러 남쪽으로 20여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로슬린, 웅장함과는 거리가 먼 작고 낡은  허물어질 듯이 눈앞에 나타난 성당,  두근거림을 쓸어내리며 발을 안으로 디뎠다. 댄 브라운 이 기술한 두명 템플기사단의 상징, 장미 문양, 뱀이 휘감고 올라가는 둥그런 기둥, 그리고 지하의 석실앞에 쓰여진 ‘기사단이 잠들다’라는 문구 모두를 벅찬 가슴으로 확인했다.

인적이 드문 시골길 여기저기에 들어선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성을 찾아나선지 10여분,낮익은 장소가 나타났다. 다빈치코드 영화에 나타난 소피와 랭던이 재회한 성으로 가는 돌다리였다. 애석 하게도 성은 프랑스인에게 팔렸고 예전의 영광은 사라진채 몰락해가는 싱클레어가문의 소유가 아니었다. 로슬린 성당안에 장식된 기사단의 상징을 런던의 템플교회에선 찾을 수 있을까.

에딘버러 웨이블리중앙역에서 런던행 기차를 타고 북해를 따라 런던까지 8시간 여정에 올랐다. 마지막 종착지인 웨스트민스터사원과 템플교회를 찾기 위함이었다. 일요일 오전, 입구에 서있는 목사에게 ‘한국에서 온 메이슨인데 예배를 보러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자, 그는 얼떨결에 템플 성경을 나에게 건넸다. 그렇게 들어선 템플교회, 긴장 속에서 나는 대리석바닥에서 천년을 지낸 다리 잘린 템플기사단들의 누워있는 모습을 확인하며 천년 전 십자군 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인세 칼럼니스트  webmaster@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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