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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여행>선상 디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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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등의 인터넷 공간이 없어 외지의 연주 현장을 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10년 전 쯤, 이집트에 근무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한 개의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하게 됐다. 이집트와 한국의 재생 방식이 달라 화면이 열리지 않았기에 방송국 자료실까지 찾아다니며 간신히 재생된 테이프를 보니 이게 웬일? 무희들이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집트 전통 악가무(樂歌舞)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밤무대 음악이 뭐야?

그렇게 애를 써도 접할 수 없었던 이집트와 아라비아 음악이어서 궁금증이 말할 수 없이 크던 차에 이집트 땅을 밟았으니 시내에 들어서면서부터 음반가게나 연주 장소부터 수소문했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나일강 선상 디너쇼다. 강변에는 살롱이 늘어지듯 유람선들이 줄지어 있었다. 프로그램은 대개 밸리댄스와 수피댄스였다.

춤도 춤이지만 이를 반주하는 음악들도 함께 들을 수 있을 터이니 비싼 티켓을 마다 않고 승선했다. 석양이 물들자 때를 기다린 듯 유람선이 나일강 위를 미끄러져 갔다. 뱃전에서 바라보는 나일강가의 풍경은 어두침침하고 축 쳐진 것이 마치 자신을 가눌 힘조차 없는 늙은이와도 같아 피라미드 속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에 들어와 보니 악사들이 탬버린을 비롯해 드럼, 아코디언, 기타, 바이올린, 오보에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잠시 후 저만치서 붉은 드레스를 걸친 무희가 등장했다. 시스루룩을 방불케 하는 얇한 천에 배꼽과 허리는 물론 가슴골까지 드러낸 무희가 음악에 맞춰 요란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아하, 이것이 그때 봤던 비디오테이프 속 춤과 음악이로세. 이런 것은 내관심사가 아닌데…’ 다소 실망한 마음에 포크로 치즈를 꾹 누르고는 접시 위에다가 칼을 마구 긁고 있는데 옆에 있던 남정네들은 포크며 나이프를 잡은 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희의 교태에 빠져 있었다.

이어진 순서는 수피댄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긴 치마를 입은 남자 무용수가 무대 한가운데로 나오는데, 보아하니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않은 앳된 무용수다. 크고도 깊은 눈동자를 살포시 내려 감으며 음악에 맞춰 한 바퀴 휙 돌자 연둣빛 바탕에 붉고 노란 문양이 그려진 치마가 접시처럼 펼쳐졌다. 버선발과도 같은 발이 사뿐 사뿐 움직일 때마다 접시 모양의 치마가 팽이 돌듯 하더니 치마 한 겹이 분리돼 무용수의 허리 위로 올라가서는 또다시 겹겹으로 펼쳐진다. 그리고는 목과 얼굴을 지나 무용수의 손가락 위에서 접시를 돌리듯 하자 여기 저기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불꽃놀이처럼 터졌다.

그런데 그 소년이 갑자기 치켜든 손끝의 접시를 계속 돌리며 객석으로 내려오더니 바로 내게로 와서는 얼굴을 맞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웬 떡! 마치 파라오에게 간택된 궁녀라도 된 듯이 우쭐해 있는데 옆자리로 가버리네. 알고 보니 무용수가 객석을 향한 포토 타이밍 서비스를 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내가 예뻐서 그런 줄 알고 얼굴이 다 붉어졌다. 부끄러워라.

수피댄스는 이슬람교 일파인 수피즘의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춤으로 사원에서 사제들이 추던 것이다. 30~40분간 한자리에서 계속 돌기도 하는데 회전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신과의 영적인 교감을 하며 황홀경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하얀 치마를 입은 사제들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미끄러지듯이 빙글빙글 돌며 춤추는 모습은 신비롭고도 아름답다. 그러나 30분이 넘는 동안 쉬지 않고 도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동작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춤이 이슬람 문화권 전역에서 의식무로써 사랑 받는 것은 빙글빙글 돌면서 몰아의 경지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원의 수피댄스가 성스럽고 신비롭다면 나일강가 디너쇼와 같은 민간의 수피댄스는 화려하고 현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일단 무용수가 입은 의상도 붉고 푸르고 노란 원색이고, 춤의 동작도 비교적 빠르고 갖가지 테크닉을 수반한다. 이와 함께하는 음악 역시 템포가 빠르고 악기의 조합과 음색이 훨씬 요란하다.

반주 음악은 겉으로 봐서는 서양 음악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전통 아랍 음악과 함께 수세기를 걸쳐 내려온 고유의 리듬과 선율, 음색을 지니고 있다. 이웃 나라인 시리아, 이라크 등과 비교해 보면 비슷한 형식과 멜로디를 지니고 있지만 이집트 고유의 가락과 융합돼 조금씩 다른 연주법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중국, 한국, 일본의 전통음악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그게 그것’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딱 들으면 알 수 있는것과 비슷하다.

이집트 음악 중에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콥트 음악이다. 콥트교 수도원이나 교회에서 전례에 참례해 보면 콥트어로 된 찬가를 들을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인 콥트교회의 전례는 그 자체가 음악의 흐름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음악이 풍부하다. 이들 노래 양식들을 보면, 합창과 몇 사람의 독창자들이 단선율 성가를 응답형식으로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악곡의 흐름을 보면 이집트 본래의 민속음악과 초기 기독교 음악의 요소가 결합된 것이 특징이며 율조와 형식이 매우 미세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반주악기로는 소형의 심벌즈, 시스트룸, 낙스 등의 금속제 체명(體鳴)악기가 쓰이는데, 주로 노래하는 사람이 직접 연주한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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