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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세의 골프 인문학(42)] 그랙 노먼의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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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경제뉴스 이인세 칼럼] 세계 최고의 선수였으면서도 메이저에서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호주의 그렉 노먼이 1986년에 치렀던 마스터즈경기를 훗날 세인들은 ‘노먼의 토요슬램’이라고 불렀다. 세계랭킹1위였으며 비지니스제국이라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쌓은 세계 최고의 사업가인 노먼이지만 마스터즈에서의 쓰라린 상처는 평생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청년시절 서핑을 하다 상어를 때려잡고 금발의 냉철한 킬러같다고 붙여진 별명이 백상어이다. 프로 골퍼 이상의 실력가인 어머니에 의해 16세라는 늦은 나이로 처음 골프채를 잡은 그는 불과 1년 만에 스크래치 골퍼가 되는 자질을 보인다. 5년 뒤인 1976년 프로에 입문하면서 이듬해엔 유럽 상금랭킹 1위로 미국에 진출하면서 비록 미국에서의 첫 우승이 다소 늦은1984년에 있었지만 과감한 경기 스타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게 된다.

그랙 노먼과 잭. 1986년 마스터즈에서 패한 노먼이 15번 홀에서 드라이버 실수후 드러눕고있다

1986년 마스터즈. 3일 내내 노먼은 선두를 달리면서 4일째를 맞았다. 세비 바예스테로스와 잭 니컬라우스, 탐 카이트 등이 끈질기게 따라 붙었지만 전반 9까지 노먼은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후반 첫 10번 홀. 어이없는 더블보기를 범하면서 노먼에게 불행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승부 가 갈린 홀은 17번. 극적으로 버디를 잡은 잭이 한타 차로 따라붙었지만 18번 홀에서 노먼은 적어도 파만하면 우승이었다. 하지만 세컨 샷이 그만 홀을 지나면서 관중석에 떨어지고 만 것. ‘수십 년 간 해오던 어프로치 샷이 왜 하필….’. 노먼은 입술을 깨물며 자책해야 했다. 결국 보기를 범하면서 잭과 플레이오프에 돌입한 상황이 됐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기싸움에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위대한 백상어’ 였음에도 결국 잭에게 승리를 넘겨주고 만다. 노먼은 동시에 잭으로 하여금 46세라는 나이에 메이저를 차지함은 물론, 통산 메이저 18승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기게 만들어 준 조연이 되어야 했다.

두 달 뒤 뉴욕 쉬네콕 힐에서 열린 US오픈. 노먼은 역시 3일째 54홀까지 선두를 지키며 마지막 날을 맞았다. 하지만 골프의 여신은 또다시 그를 버렸다. 4일째 경기에서 노먼은 무려 75타를 쳐, 66타를 친 레이몬드 플로이드에게 우승을 넘겨줘야 했다.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턴베리에서의 디오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기일전한 노먼은 역시 3일째 경기가 끝난뒤 선두에 올랐다.  일요일 아침 골프장에 나온 그는 두려움이 앞섰다. 지난 두 차례의 징크스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징크스는 다행히 없었다. 2위와 5타차를 유지하며 노먼은 비로서 여유있는 우승을 한 것이었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으로 노먼은 비로서 정상의 선수로 인정을 받게 됐다.

1986년의 마지막 메이저인 PGA챔피언쉽이 열린 미국 오하이오의 인버네스골프장.  노먼은 이 대회에서도 3일 내내 70타를 밑도는 65-68-69타를 쳐, 선두로 4일째를 맞았다. 미국에서의 징크스가 다시 살아난 것 일까. 마지막 날의 재앙이 또 시작됐다. 실망스러운 76타로 무명의 밥 트웨이에게 2타차로 허무하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1986년 한해의 메이저 대회 모두에서 54홀을 리드하고 지켜내지 못한 것. 사람들은 이를 가르켜 ‘노먼의 토요슬램’이라고 불렀다. 그 해는 불명예스러운 세계 상금랭킹 1위의 타이틀만이 남게된다.

그렉 노먼. 1996년 마스터즈에서의 패전

메이저와의 악연은 다음해에도 이어졌다. 1987년 마스터즈 연장전 2번째 홀에서 래리 마이즈가 칩샷으로 버디를 하자 그린에 올려놓고도 우승을 놓쳤는가 하면, 89년 마스터즈에선 닉 팔도에게  한타차로 패했다. 마스터즈가 외면한 그의 마지막 불운은 1996년이었다. 역시 3일째 선두로 이번 에는 2위와 무려6타차. 하지만 4일째 경기는 이전의 징크스보다 더 지독했다. 2위 닉 팔도가 67타를 친 반면, 노먼은 최악의 78타를 쳤다. 두사람간에 무려 11타차가 난 것. 마스터즈의 신이 장난을 치지 않고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모두들 경악했다. 30년의 골프 인생에서 위대한 선수의 반열에 올랐지만 노먼은 그렇게 3차례의 마스터즈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지독하게 마스터즈의 운이 없었던 노먼이었지만 그는 대신 갑부가 되어 대신 위로를찾을 수 있었다. 2010년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쥬피터 섬. 타이거 우즈의 5백억원짜리 대 저택 등 세계적 갑부들 만 살 수 있는 이 섬의 호화 골프장인 메달리스트 코스에서 그랙 노먼이 연습  라운딩을 하고 있다. 12홀에 다다를 즈음 핸드폰이 울렸다. 리복 인터내셔널의 CEO 폴 파이어맨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노먼이 소유하고 있는 리복과 아디다스-살로몬사 간의 인수합병 작업에 난항이 예상 된다는 보고였다. 나무 그늘에 잠시 앉아 노먼은 20여분을 소비했다. 그의 핸드폰은 쉴 새가 없었다. 이번에는 노먼 어패럴의 인터내셔널 책임자인 바트 콜린스였다. 호주 본사에서 날아온 골프의류 ‘그레이트 샤크’의 책임자와 내일 오전 미팅이 있다는 통보였다. 전화통에 불이나면서도 어찌어찌 18홀을 끝내고 이제 클럽하우스로 가서 대기중인 와인생산 책임자를 만나야 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노먼 소유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새로운 5종의 와인시음을 위해서였다.

사업가로서 성공한 그렉 노먼

그를 통하지 않고 시판되는 와인은 없을 만큼 와인의 전문가였던 그는 미국과 호주에 거대한 와인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70년대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부터 와인에 심취되어 있었던 그는 호주에서만도 한해 20만 상자가 넘는 와인을 팔 정도로 호주 와인을 세계에 펼쳐놓은 장본인 이기도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시음한 5종의 와인이 노먼으로 부터 합격점을 받자 와인 책임자는 가벼운 목례로 경의를 표했다. 저녁 식사이후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를 통해 제작될 ‘프로골퍼와 기업운영’의 마지막 수정원고까지 읽어야 했다. 사업에는 남다른 기질이 있었던 노먼은 현존하는 프로골퍼 중 최고의 갑부로 그의 기업은 제국이었다.  골프관련 의류업 만 해도 지난 해 2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부동산 투자도 호주를 비롯해 1만군데가 넘는 골프장 안에 체인레스토랑과 주택을 짓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5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이 필요했던 골프클럽제조사 킹 코브라를 비롯해 몇개의 골프회사도 보유하고 있다. 골프장 디자인사업과 미국에 여러곳의 골프장을 건설하고 소유하고 있음은 물론이어서 사람들은 그의 사업적 기질에 혀를 내둘렀다.

‘사업은 앞을 내다보고 꼭 투자할 곳에 해야한다’는 그는 “아놀드 파머는 내복 사업, 세차장 등등 너무 이름을 남발했으며 잭 니컬라우스는 대중들에게 어필되지 못했고무분별하게 부동산에 과잉 투자를 했다”면서 시행착오를 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노력했다. 미국인 스튜어디스와 첫 결혼 2년, 테니스 스타 크리스 에버트와 재혼 1년, 2010년 인테리어 디자이너 커스텐 커트너와 3번째 결혼을 한 그는 비록 마스터즈에서는 치욕을 맛보았지만 글로벌 제국을 건설해 세계적인 재벌 중의 재벌로 보상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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