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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세의 골프 인문학(1)] 5백년 전에 내려진 금지령 “백성들에게 골프를 금한다”
  • 이인세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8.0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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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세 칼럼니스트

[e경제뉴스 이인세 칼럼니스트] 1502 년 스코틀랜드의 바닷가에 위치한 세인트 앤드루스 언덕. 모처럼 내리 쬐는 밝은 햇살을 받으며  앤드루는 오래된 흔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난 40여 년 간 그는 골프를 칠 수 없었다. 손때  묻은 나무 골프채만 이따금씩 꺼내서, 7살시절 아버지와 함께 치던 기억을 회상할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 역시 반 세기 동안 골프를 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제임스2세(1430-1460) 왕 때문이었다. 선친  제임스1세가 암살 당한 뒤 6살의 나이로 왕에 오른 그는 권력을 휘두르며 약한 왕권을 강화하는데 골몰했다. 귀족이나 국민들의 성원을 얻기엔 아직 역부족 인 상황에서, 그들이열중하는 골프라는 놀이조차 왕은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당시의 정세는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의 백년 전쟁(1337-1453)이 끝나고, 잉글랜드 내부에서의 장미전쟁(1455-1485)에 돌입하던 시기였다. 어수선한 틈 속에서  제임스2세는 잉글랜드를 침공해 남북이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전쟁터에서 조차 병사들이 궁술 연습 보다는 골프를 치는 모습이 좋을리 없었다. 국면 전환의 이슈가 필요했던 차에 그는 극단의 조치를 내린다.
    
“병사들이 활쏘기 연습과 훈련을 게을리하면서 퓨트볼(FUTE BALL,풋볼)과 고프(GOEFF,골프) 에 만 정신이 쏠려있어, 차후 12세에서 50세에 이르는 전 국민에게  이 두가지 운동을 금한다.”

이른 바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영국 의회 기록에 남겨진  ‘전 국민 골프 금지령’이었다.
수백 년 전쟁의 황 폐한 시기에 그나마 유일한 탈출구였던 골프는 그렇게 왕의 한마디로 인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골프를 금지시킨지 3년 만에 제임스2세는 자신이 일으킨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패한채 1460 년 29세의 나이로 전사한다.  뒤를 이은 제임스 3세 역시 골프 혐오증이 있었다. 나약한 군주였던 제임스3 세는1470년 더욱 강력한 골프금지령을 재확인 시킨다. 골프에 알레르기가 있었던 그는 1488년 귀족들의 반란으로 암살당했다. 금지령의 와중에서도 수도원의 주교들과 귀족,  백성들은 숨어서 골프를 치다가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다.
 

제임스2세 캡쳐

 
무능한 왕들에 의해 스코틀랜드의 국력은 쇠약해져가고만 있었다. 어두웠던 반세기가 지나고 새로운 16세기가 시작된 1502년 어느날. 스코틀랜드에도 봄은 왔다. 제임스4세는 젊고 유능한 국왕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영토를 넓히는 한편 잉글랜드와도 전쟁과 협상을 반복하면서 국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골프에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국력 회복의 명분으로 그 역시 1491년 다시 한번 골프 금지령을 내렸지만, 언젠가는 이를 해제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의 통치가 결실을 맺어가던 16세기 초는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이 유럽의 전쟁에도 사용되던 시기였다. 당시 중국은 명나라 였고, 조선은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화약과 골프는 서로 상반됐다. 골프금지령의 명분은 궁사들이  활도 만들지 않고 활쏘기 훈련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었다. 전쟁에 이용되기 시작한 화약은 그러나 전쟁에서 활의 의존도를 줄였다. 전쟁의 전술이 바뀌면서 궁사 들의 역할도 줄어든 것이었다.  골프금지령의 명분은 약해져 갈 수 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 의회문서 'golf the early days' page 16 캡쳐


금지령이 내려진 지 45년이 흐른 1502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4세와 잉글랜드의 헨리7세는 상호불가침 조약인 ‘글래스고우 협약’을 맺는다. 이 평화 협정과 함께 제임스4세는 골프금지령을 해제해 버렸다. 국민들에게 자유롭게 골프를 칠 권리를 준 것이었다.
   
골프금지령을 해제한  제임스 4세가 잉글랜드와  평화협정을 맺을 당시, 헨리7세 왕의 딸인 엘리자베스와 정략결혼을  했다. 물론 상호불가침 협약에 따른 명분이었지만, 골프를 워낙 좋아 했던 제임스4세가 전쟁을 그만두고 골프만 치고 싶어서 적국의 딸과 결혼했을것이라는 말이 백성들 사이에선 공공연히 나돌았다. 결혼도 했고 전쟁도 없이 골프에만 매달렸던 제임스4세는 그러나 10년 밖에 골프를 치지 못했 다. 잉글랜드의 헨리7세가 사망하면서 ,제임스4세의 매부인 헨리8세가 즉위하자마자 평화협정 이 깨지면서 다시 전쟁이 터진 때문이었다.  처남, 매부간  전쟁의 와중에서 1513년 제임스4 세 는 플라튼 전투를 벌이던 중에 전사하고 만다.
    
불이 지펴진 골프 붐은 제임스4세의 뒤를 이은 아들 제임스5세가 즉위했어도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제임스5 전투에서 30세의 짧은 삶을 마감하면서  유일한 혈육으로 스코틀랜드의 최초 여왕인 메리가 등극한다. 마침내 스코틀랜드는 메리여왕의 치세인 16세기에 황금기를 맞이 한다. 메리는 골프를 프랑스와 유럽까지 전파한 주인공이다. 그녀의 뒤를 이은 아들 제임스6세의 즉위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양국은  마침내 통일이 된다.  제임 스 6세의 외가쪽 고모할머니 였던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1세가 후손이 없어 유일한 정통 왕가의 자손은 제임스6세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적통까지 겸한 그는 최초로 양쪽 나라를 통치하는 통합국왕인 제임스1세가 된다.  이 시기부터 영국은 그야말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불리면서,  더불어 골프도 영국과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지게 된다.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한 평생 골프를 치지 못한채 50살을 훌쩍 넘긴 앤드루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골프채를 들고 반세기 만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양떼들이 놀고 있는 초원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인세 칼럼니스트  308j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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