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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입력 2017.06.09 20:37
  • 수정 2017.06.12 10:42

당 타이 손 넘어선 조성진...리사이틀 주목

아시아인 최초 우승...피아노 세계를 호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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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경제뉴스 노영조 기자] 피아노의 시인인 쇼팽을 기리기 위해 그의 조국 폴란드가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주최하는 이 콩쿠르는 가장 권위있는 국제피아노경연대회로 명 피아니스트들의 산실 역을 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국제무대에서 뜬 것은 2년 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일이다. 조성진은 그 후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 취입 등 국제적으로 가장 바쁜 연주가가 됐다. 요즘 그의 LP음반조차 인기다. 쇼팽 콩쿠르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성진은 2년전 쇼팽콩쿠르 이후 국제 무대에서 뜨고 있지지만 그보다 앞서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국내 음악계가 흥분했던 일이 있었다.

지난 1980년 10월. 손 아무개라는 한국계 피아니스트가 우승을 했다는 소식에 흥분한 국내 음악계가 술렁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오보였음이 드러났났다.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이 당사자였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표기상의 오류였다.

그 직전 대회인 75년에 크리스티안 짐머만, 그 이전엔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그리고 직후인 85년엔 스타니슬라브 부닌 등 훗날 세계적 에트왈(스타)이 된 이들이 우승을 했던 콩쿠르니 국내 음악계가 흥분할만도 했다.

그러나 곧 오보임이 밝혀졌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당 타이 손이라는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였다. 당 타이 손을 손 아무개라는 한국계 연주자로 착각한 측이 성급히 전했던 것이다.

당 타이 손은 화제의 인물이 됐다. 오랜 전화에 시달린 베트남 출신인데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을 했을 뿐 아니라 3개의 특별상(폴로네이즈상, 마주르카상, 콘체르토상)까지 휩쓸어 일대 파란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또한 당시 3차 예선에서 유고출신 이보 포고렐리치를 탈락하자 그를 밀었던 아르헤리치가 화가 나 심사를 거부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대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 타이 손은 우승자가 됐으나 어찌 보면 불운했다. 국제 콩쿠르의 덕을 보는 게 아니랄 변방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차점으로 탈락한 이보 포고렐리치를 밀었던 아르헤리치는 남미출신답게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상체를 약간 숙이고 피아노를 연주하면 긴 머리가 얼굴을 가리는데 마치 사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대선배인 빌헬름 박하우스가 ‘건반위의 사자’로 불린 터라 그녀에게는 ‘피아노의 여제’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그런 여파로 당 타이 손은 우승자이면서도 국제무대에서 한동안 포고렐리치에 치여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 타이 손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주자로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91년 카나다로 이주해 제2의 음악인생을 시작하면서 가장 쇼팽다운 피아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교사인 어머니의 지도로 피아노에 입문했다. 어린 시절 베트남 전쟁통에 피아노가 없어 종이에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을 했다고 한다. 후에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유학을 갔다.

테크닉보다는 진지한 표현으로 그의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 음악컬럼니스트는 “그의 연주는 서정미가 정말 빼어나다. 남자의 피아노 터치가 어쩌면 이렇게까지 섬세할까 싶을 정도”라고 평했다.

전쟁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그가 이제 또 다시 방한 연주회를 갖는다.

 10일 예술의전당 연주회에서 당 타이 손은 쇼팽과 더불어 리스트를 선보인다.리스트의 순례의 해 곡도 있지만 슈베르트의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피아노소나타 21번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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