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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명동

[칼럼]'고봉진의 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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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휴일 서울역사박물관에 가서 〈명동이야기〉전을 관람했다. 전시회는 주로 신문기자 겸 작가였던 이봉구의 시각에 비쳤던 지난 세기 1950~60년대의 명동을 여러 인사들의 증언과 각종 자료들을 통해 재현해 주는 것이었다.

50년대 서울이 수복되자 거의 폐허가 되어있던 명동은 피난 갔던 예술인들이 돌아와 몰려들면서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문인, 화가, 음악인, 연극인 들이 ‘돌체’ ‘포엠’ 같은 음악 다방이나 ‘은성’ 같은 막걸리 집에 모여 앉아 서로 영감을 교환하고 자극했다. 그들은 시대의 아픔을 같이 앓으며 소위 ‘명동문화’란 것을 꽃피웠다.

60년대를 거치고 70년 초반까지는 그러한 전통과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옮겨 가면서 명동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정체성을 점차 잃게 되었다. 이봉구는 그 다음해인 1974년 뇌일혈로 쓰러져 명동을 떠났다. 1983년까지 수유리 자택에서 투병하며 생존했지만 이미 명동과는 단절된 삶이었다.

명동은 그 이후 70년대 후반에는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가 ‘쉘부르’ ‘오비스 캐빈‘같은 곳을 거점으로 한때 유행하기도 했지만,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젊은이들이 가벼운 쇼핑과 산책을 즐기는 단순한 통로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2009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명동예술극장의 재등장이다. 옛 국립극장 건물은 1975년 대한투자금융이 인수하여 사무실로 개조해 사용해왔으나, 1994년 노후화된 기존 건물을 허물고 신사옥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문화예술인들과 ‘명동상가번영회’가 이를 저지하고 예술극장을 복원하겠다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 민의를 수용한 정부가 2004년 그 건물과 대지를 매입해서 복원 공사에 착수했다. 극장 외벽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건물주가 오피스로 개조하면서 두껍게 칠한 페인트를 1년여의 준비과정과 4개월의 작업을 거쳐 조심스럽게 제거했고, 객석 출입구 로비의 내벽도 별도의 마감처리 없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서 건물의 원형 일부분을 그대로 남겼다. 그러나 내부구조는 철저히 현대적인 첨단 극장으로 개조하였다. 원래 국립극장 때 1178석이었던 객석을 552석으로 변경하여 좌석과 무대 간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함으로써 관객과의 소통, 친밀감을 극대화한 연극 전문극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명동예술극장 재건은 단순한 복원, 보존의 의미를 뛰어 넘어, 예술인과 명동 상인, 그리고 시민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명동상을 다시 탈환하고 부활시키겠다는 원망의 표출이었다.

지금 명동은 2009년에 시작된 두 차례의 세계금융위기 이후 엔고의 여파로 일본관광객이 몰려들고, 중국 관광객도 일본의 동북지방 지진 이후 반사적으로 부쩍 불어나고 있어, 상가와 숙소는 대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문화 예술의 거리로서의 위상 회복은 아직 요원한 것 같다.

대학재학 중에 군복무를 마치고 1961년 복학해서 늦게 학교를 다닌 필자는 1960년대 명동문화를 즐기고 기억하는 마지막 학생세대에 속할 것 같다. 그때에는 전국 어디를 가도 목로주점에서 여성 고객은 거의 발견할 수 없을 때였다. 그러나 명동은 달랐다. 특히 ‘은성’에는 막걸리 잔을 마주하고 있는 여성고객 한두 팀은 언제나 볼 수 있었고, 최정희, 장덕조, 전혜린 같은 분들이 그곳의 단골이었다. 어쩌다 들르는 나 같은 어린 풋내기하고도 흔쾌히 술벗이 되어 주었던 어른들도 많았다. 바로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인 이봉구 같은 분이 그런 어른 중의 한 사람이었다.

1963년 명동국립극장에서 여운계가 출연한 ‘안티고네’를 관람했었다. 그때 같은 고등학교 1년 후배로 불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학우가 그녀와 약혼을 했다며 초대를 해주었는데, 배정된 좌석이 2층 맨 앞 줄 중앙이었다. 그 때도 뒤풀이를 ‘은성’에 가서 했다. 주인마담은 과묵한 편이나 카운터에 마주하고 앉으면 언제나 자식보다 어린 고객의 취담에도 귀를 기울여 주었고, 말벗이 되어주기도 했다. 뜻밖에 그 분의 모습을 이번 전시회 사진 중에서 다시 만났다. 무척 감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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