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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4 12: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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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비평> 그래도 믿을 것은 언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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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7광구의 한 장면.
지난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기묘한 사건이 일어났다. 2009년작 ‘셜록 홈즈’ 2편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이 첫 주말동안 불과 3963만7079달러밖에 벌어들이지 못한 것. 전편의 첫 주말 6230만4277달러에 비하면 무려 36.4%나 떨어진 결과다. 이는 생각보다 훨씬 특이한 일이다. 근래 시장분위기에서 히트작 2편은 대부분 전편 흥행을 능가해왔기 때문이다. 전편 팬베이스가 일거에 쏠리는 개봉 첫 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예는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0년대 후반 이후 거의 다다. ‘매트릭스’ ‘캐리비안의 해적’ ‘슈렉’ ‘배트맨 비긴즈’ ‘트랜스포머’ ‘엑스맨’ ‘토이 스토리’ ‘트와일라잇’ ‘미션 임파서블’ ‘내셔널 트레저’ 등 끝도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1990년대 후반 이후 DVD나 케이블TV 등 영화 2차 시장이 1차 시장을 웃돌 정도로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1편을 극장에서 보지 않았더라도 2차 시장에서 이를 관람하고는 잠재적 2편 극장관객층으로 변모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물론 전편이 장사는 잘 됐으나 대중만족도는 떨어지는 영화였을 경우 상황이 조금 달라지긴 한다. 관객들도 다시 속고 싶어 하진 않는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2편, ‘무서운 영화’ 2편 등은 그래서 전편보다 못한 흥행을 거뒀다.

그러나 ‘셜록 홈즈’는 그런 경우라고 보기 힘들다. 전편 자체가 ‘괜찮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아서 코난 도일 원작에 충실한 홈즈는 아니었지만, 영화적 완성도 면에선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로튼토마토(www.rottentomatoes.com)집계에 따르면, ‘셜록 홈즈’ 전편은 북미지역 비평가 227명 중 159명에게서 호평을 얻어내 약 70%의 호평률을 기록했다. 이 정도면 수작평가다. 대중평가 측면에서도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www.imdb.com) 폴에서 15만8670명의 네티즌들이 10점 만점에 평균 7.5점을 매겨 중상급 이상의 반응이 확인됐다. 이러니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의 실망스런 첫 주말 흥행을 놓고 웬만한 분석가들조차 고개를 저으며 의문을 표한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와 유사한 일들은 올해 들어 몇 번이고 목격되곤 했다. 2009년 2억7732만2503달러를 벌어들이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남성코미디 ‘행오버’ 2편도 2억5446만4305달러로 흥행을 마쳐 전편대비 8.2% 흥행이 감소했다. 역시 전편 만족도는 대단히 높았는데도 말이다. 비평가 호평률은 78%, 네티즌 평점은 7.9였다.

픽사 애니메이션 ‘카 2’도 마찬가지다. 1억9145만2396달러를 벌어들여 전편 ‘카’의 2억4408만2982달러에 비해 21.6% 수익이 감소했다. ‘카’ 전편 역시 비평가 호평률 74%, 네티즌 평점 7.4를 기록한 수작이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2’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2억1543만4591달러를 벌어들인 전편에 비해 2편은 1억6524만9063달러에 그쳐 23.3% 감소로 치달았다. ‘쿵푸 팬더’ 전편은 ‘카’보다도 더 반응이 좋았는데 말이다. 비평가 호평률 88%, 네티즌 평점은 7.6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원인으로 볼 수 있는 답이 하나 도출되긴 한다. 위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한 가지 공통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전편보다 수익이 떨어진 속편들은 비평적 평가 면에서도 거의 전편들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행오버’ 속편은 전편의 78% 호평률이 무색한 35% 호평률을 기록했고, ‘카 2’도 전편의 74%에서 38%로 뚝 떨어졌다. 화두가 된 ‘셜록 홈즈’ 역시 70%에서 59%로 하락한 상황이다.

결국 대중이 이전보다 비평가들 평가에 훨씬 더 신경 쓰다 보니 발생된 현상이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사실 그 외엔 다른 추론이 불가능하다. 물론 반론이 곧바로 제기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영화에 대한 비평적 평가와 흥행성적은 오히려 반비례하는 게 상식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리고 그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져온 게 사실이다. 그러던 대중이 갑자기 방향을 180도 틀어 안 보던 평론을 들여다보게 됐다는 주장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그 정도 대중심리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만한 어마어마한 사건이 근래 발생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비롯된 금융 위기 여파다. 특히 고용측면에서 그 여파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황숙혜 국제경제칼럼니스트에 따르면 “구직 단념자와 불완전 고용을 감안할 때의 실업률은 20.8%에 이른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추정”이라고 한다.

이러면 당연히 대중심리 전반이 뒤집히게 된다. 특히 고용불안과 밀접한 관계에 놓인 젊은 층 심리는 더 그렇다. 미국 젊은 층은 지금 고용불안에 시달리다 못해 거의 노이로제 직전까지 가있는 상황이다. 올해 전 세계적 화제가 된 미국 대학생들의 월스트리트 시위로도 충분히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처럼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젊은 층은 바로 영화의 주 소비층이기도 하다. 이러니 미국 내 전체 영화선택 구조의 판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 불황기 소비심리 제1원칙에 속하는 건 ‘문화소비부터 줄인다’다. 그러다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상황까지 가면, 어떻게든 ‘신중한 선택’을 취하려 애쓰게 된다. 이처럼 ‘신중한 선택’에 갑자기 무게가 실리다보니, 인터넷에 접속해 비평이라도 뒤적거리며 실패율을 줄이고자 하는 태도가 슬금슬금 퍼지게 됐다는 얘기다. 한국 젊은 층은 그나마 부모로부터 용돈이라도 받지, 사회분위기상 그럴 수조차 없는 미국 젊은 층이 없는 살림 쪼개 간만에 영화 한 편 보려할 때 입장을 떠올려보면 상당부분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이를 방증하는 예는, 위 실패사례들뿐 아니라 성공사례들에서도 발견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 봄 개봉한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 상황이다. ‘언리미티드’는 ‘분노의 질주’ 프랜차이즈 5편째 엔트리다. 이쯤이면 프랜차이즈 피로도가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바로 직전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은 네티즌 평점에서 6.4를 기록하는 심심한 반응만을 얻었다. 그 다음 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는 무려 2억983만7675달러를 벌어들이며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첫 주부터 8619만8765달러로 이미 프랜차이즈 최고치였다.

이 같은 이변은 개봉 전 각 미디어를 통해 제시된 비평가들 평가에 대중이 귀 기울인 결과라는 분석 외 다른 추론이 불가능하다.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는 비평가 호평률이 78%를 기록, 프랜차이즈 사상 가장 높았다.

이보다 더 노골적인 사례도 존재한다. 올해 초 제83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지명 상황이다. 당연히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영화들은 비평적 평가도 높을 수밖에 없는데, 후보 지명된 10편의 영화들 중 절반인 5편이 1억 달러 이상 수익을 북미지역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1억 달러에 근접한 9000만 달러 이상 흥행작 ‘소셜 네트워크’와 ‘더 파이터’까지 합하면 10편 중 7편이 블록버스터급 흥행을 거뒀다는 얘기가 된다. 아무리 아카데미상이 가장 대중친화적인 상이라 정평이 나있어도, 이 정도로 흥행과 직결된 사례는
1970년대 이후 30여 년 만이었다. 물론 아카데미상 취향이 이전보다 더 대중적으로 변모한 것은 아니다.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하는 구조가 점점 더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이다.

반대로, 흥행 차트를 놓고 봤을 때도 상황은 거의 같다. 프랜차이즈 속편들을 제외하고 흥행 랭킹 상위에 오른 영화들은 모두 비평적 평가도 좋은 영화들이다. 프랜차이즈 제외 상위 랭크 영화들 순서대로 로튼토마토 집계를 적용해보면, ‘토르: 천둥의 신’(77%),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83%), ‘퍼스트 어벤져’(78%), ‘더 헬프’(76%),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90%) 등이다. 일반적으로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작들이 호평률 80% 선에서 결정된다는 점에 비춰볼 때, 경향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미국대중은 이제 비평에 귀 기울이며 영화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반론을 제기하려면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대중은 보는 눈이 없는 줄 아느냐’는 것이다. 대중은 자기 시각에서 재미없는 영화를 안 보고 재미있는 영화를 본 것뿐이란 반론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대중 사이에서 입소문이 날 리 없는 개봉 첫 주부터 비평적 평가가 좋은 영화들이 폭발적 흥행세를 보이고, 그렇지 못한 영화들은 아무리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처럼 될성부른 2편일지라도 나가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해주진 못한다. 그 어떤 반론을 들이대도 현재 미국대중의 영화선택에 비평가들 평가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추론을 깨진 못한다.

이제 한국 상황을 돌아보자. 같은 경제 불황 상황에 놓여있고, 똑같이 영화 주 소비층인 젊은 층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지만, 한국대중은 절대 비평가들 평가에 귀 기울이는 일이 없다. 그보다는 포털사이트 영화페이지의 네티즌 평점을 더 신뢰하는 분위기다. 아무리 영화개봉 초반 고용된 ‘평점 알바’들이 득실거리고, 이를 대중 본인들도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를 평가하는 기사 콘텐츠를 내보내는 영화비평가들이나 영화기자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취향 차원에서 신뢰하지 않는다기보다 상당부분 편견까지 지니고 있다. 영화비평가들이나 영화기자들 같은 ‘전문가’들은 고상 떠는 예술영화들이나 좋아하고 대중이 좋아하는 상업영화들은 늘 비난하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는 편견이다. 심하면 영화사 측에서 뒷돈을 받고 재미없는 영화도 호평해준다거나, 재미있는 영화도 뒷돈을 안 주면 혹평한다는 식 음모론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그러니 아무리 알바가 득시글거리더라도 ‘일반대중’ 입장에서의 평가에 가까운 포털사이트 평점을 가장 신뢰할 만한 선택기준으로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대중의 편견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건 또 아니란 사실이다. ‘검은 거래’ 관련 음모론은 사실상 권력에 대한 경제 불황기 대중의 기본적 불신과 증오에 기반한 것이라 치더라도, ‘상업영화들을 비난하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견해에는 일정부분 짚이는 구석이 있다. 영화 장르가 막 부흥하던 1990년대 영화전문언론들의 기본적 태도가 바로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예술영화 지향적이었는지, 그에 발맞춰 1990년대 내내 한국극장업계는 예술영화전용관 설립 붐이라는 희귀한 현상을 맞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번 이미지가 ‘세게’ 잡히다보니, 21세기 들어 인터넷언론을 중심으로 보다 대중친화적인 영화비평 풍토가 들어서게 됐어도 대중은 좀처럼 영화비평 전문 집단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1933년 버라이어티지 창간 이후 언제나 대중친화적 입장에서 주류영화비평이 성립된 미국 상황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미국대중은 그간 영화비평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의식만 휘발됐을 뿐, 전문 집단의 비평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거부감이나 위화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황이 바뀌자 곧바로 미디어의 영화비평을 가이던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영화비평이란, 그야말로 ‘영화비평을 읽던 사람들’의 전유물이 돼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런 가이던스 역할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중심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진배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간만에 영화 한 편 보려고 나왔는데 질 떨어지는 영화라도 관계없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좋은 선택을 하고 싶어 하고, 이전보다 훨씬 더 자신의 선택이 좋은 것이기를 기대한다.

이제 선택은 대중의 몫이다. 아무리 인터넷상에서의 입소문이 빠르다고 해도 요즘처럼 스크린 초토화 확대개봉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라면, ‘질 떨어지는 영화’에 의한 피해도 막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7광구’ 상황이 대표적이다. 물론 개봉 2주차가 되자 인터넷상에서도 소문이 퍼져 관객동원이 뚝 떨어지긴 했지만, 그 전 개봉 첫 주에 포털사이트상에서 떠도는 출처불명의 정보만 듣고 극장으로 몰려간 135만4680명의 관객을 구제해주진 못했다.

물론 각 언론은 개봉 이전부터 ‘7광구’에 대해 경고했었다. “<7광구>는 재앙에 가까운 영화”(한겨레), “영화 속 괴물은 진화했지만, 영화 자체는 진화하지 못한 셈”(서울신문), “‘괴물2’를 기대하게 했던 영화는 ‘디워2’에 가까운 영화를 보여준다”(주간한국) 등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대중에 경고했다. 그래도 135만4680명은 극장으로 몰려갔다. 아무도 전문 집단의 평가 따윈 알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현 시점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현재 상황에서 언론사들의 영화비평은 대중 취향에서 딱히 멀지 않다. 의도적으로라도 대중 입장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포털사이트 평점 란엔 개봉 초 알바가 득시글거리고, 영화개봉 이전 시사회에서 봤다느니 하면서 게재되는 인터넷상 각종 포스트들도 알고 보면 일종의 제휴관계에 놓인 것들이 많다. 현 시점, 대중이 그래도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건 언론사의 공식비평 쪽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선택은 여전히 대중의 몫이긴 하다. 하지만 가뜩이나 쪼들리며 안 하던 시위까지 감행한 미국 젊은 층이 결국 실패를 줄이기 위해 참고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언론의 공식비평이었단 점을 감안해둘 필요 정도는 있다. 현명한 소비자는 언제나 편견이 없는 소비자고, 차악(次惡)의 기준에서 가장 올바른 가이던스를 선택하는 소비자다. 물론 재미없건 어쩌건 남의 말 듣는 게 더 싫다는 소비자라면, 그냥 계속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과정은 언제나 자유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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